주변볼거리
청량산/청량사
아름다운 청량산, 소목화당에서 5km, 자동차로 4~5분 소요
663년(신라 문무왕 3년) 원효대사가 창건했으며, 청량산 도립공원 내 연화봉 기슭 열두 암봉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다.
이미지출처 : 청량사
이육사문학관
청포도, 광야 등으로 잘 알려진 시인 이육사 선생님의 생가와 문학관, 차로 15분
일제 강점기 17번이 옥살리을 하여 민족의 슬픔과 조국 광복의 염원을 노래한 항일 민족시인 이육사 선생관련자료와 흩어져 있는 기록을 한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.
이미지출처 : 이육사문학관
도산서원
소목화당에서 8km, 자동차로 15분 소요
도산서원(陶山書院)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유학자이자 선비인 퇴계 이황이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제자들에 의하여 건립되었다. 현재의 도산서원은 퇴계가 생전에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며 제자들을 가르쳤던 도산서당 영역과 퇴계 사후에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지은 도산서원 영역으로 크게 나뉜다.
이미지출처 : 도산서원
농암종택
농암이현보 선생님의 종가집, 소목화당과 가장 가까운 이웃. 한옥숙박, 고택체험가능
농암(聾巖) 이현보(李賢輔 1467~1555)의 종택(宗宅)이다. 이현보는 1504년(연산군 10년)에 사간원정언으로 있다가 임금의 노여움을 사 안동으로 유배된 인물이다. 1976년 안동댐 건설로 원래 종택이 있던 분천마을이 수몰되었다. 안동의 이곳저곳으로 흩어져 이건(移建)되어 있던 종택과 사당, 긍구당(肯構堂)을 영천이씨 문중의 종손 이성원이 한곳으로 옮겨 놓았다.
이미지출처 : 농암종택
고산정
퇴계선생이 즐겨 찾던, 최고의 미를 자랑하는 한국의 정자. 우리마을 강건너 위치
고산정은 조선 중기의 학자로 퇴계 선생의 제자인 성성재(惺惺齋) 금난수(琴蘭秀, 1530년~1604년) 선생의 정자이다. 선생은 35세인 1564년(명종 19년) 이미 예안 부포에다 '성재(惺齋)'라는 정자를 짓고 학문에 전념하였으며, 이어서 당시 선성(宣城: 예안현의 별칭)의 명승지 가운데 한 곳인 이 곳 가송협에 이 고산정을 짓고 '일동정사(日東精舍)'라 불렀다.
이미지출처 : 고산정
퇴계종택
소목화당에서 13km, 자동차로 20분 소요
1982년 12월 1일 경상북도기념물 제42호로 지정되었다. 조선시대 중기의 대학자 퇴계(退溪) 이황(李滉:1501∼1570)의 종택이다. 원래의 가옥은 없어졌으며, 지금의 가옥은 퇴계의 13대 후손인 하정공(霞汀公) 이충호가 1926~1929년에 새로 지은 것이다.
이미지출처 : 퇴계종택
한국국학진흥원
소목화당에서 16km, 자동차로 25분 소요
한국국학진흥원은 훼손 및 멸실의 위기에 처해있는 전통문화유산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·연구를 통하여 국학자료의 과학적인 보존방법을 모색하고, 전통문화와 사상에 기초한 교육을 통해 미래사회의 신한국을 이끌어갈 정신적 좌표를 확립시키기 위하여 설립되었다.
이미지출처 : 한국국학진흥원
산림과학박물관
산림과 과학의 배움터 경상북도산림과학박물관
경상북도산림과학박물관은 잊혀져가는 산림사료의 영구적 보존과 학술연구를 통하여 산림문화를 창달하고 산림문화 학습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자 건립되었습니다.
이미지출처 : 산림과학박물관